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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영 매거진

게임정보 |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간에 벌어진 무력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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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VZ3Z158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1-21 19:46 조회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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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대첩 기념일은 순수 민간인들로 구성된 33인의 독도의용수비대가 6·25전쟁의 혼란 중에 독도를 무단 침범한 일본에 맞서 치른 전투 중 가장 크게 승리한 1954년 11월 21일 전투를 기념하는 날이다.



88fc8e6163b6334ac953e3aee76b820c.jpg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간에 벌어진 무력충돌

***1953년 7월23일 '1차 전투'**

의용수비대가 독도에 상륙해 막사로 진지를 구축한 지 석달이 지난 1953년 7월23일 새벽 5시 0분. 정확히 두시간씩 교대하며 근무를 서던 중 전망보초 김은호로부터 "일본 군함이다!"라는 보고가 들어왔다.

우리 수비대의 막사 서 전방 2백미터 위치에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PS 9함이 진격해왔다.

우리 수비대원들의 동작은 기민했다. 조상달, 이상국, 화영문은 전마선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나와 함께 한 조가 되고, 나머지 대원들은 서기종의 지휘로 다른 한 조로 양분해서 공격하기로 했다. 신호탄과 함께 엄호사격을 바란다고 부탁하고 우리 결사대는 보트를 타고 PS9함과의 거리 20m까지 돌진했다.

"탕! 탕! 뚜루룩! 탕탕! 탕탕!"

연발하는 총성속에 각자가 지닌 소총과 보트에 설치된 경기관총에서 2백여발의 실탄이 PS 9함을 향해 집중적으로 퍼부어졌다. 그러나 함정 철판의 두께가 너무 두터워 구멍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갑자기 닥친 총격과 육지에서 쏘아대는 지원사격에 당황한 일본함정은 가제바위 옆을 우회해 멀리 동쪽을 향해 도망갔다.

막사쪽으로 보트를 돌려 돌아오면서 바다사자 한마리를 잡아 막사에 도착했다. 그러자 부대본부에 남아 지원사격을 했던 대원들이 일제히 찰싹거리는 물 곁으로 뛰어들어 "와!" 하는 함성과 함께 특공대원들을 맞아주었다. 동해의 절해고도인 이 독도에서 나라 사랑하는 대원들의 갸륵한 마음들이 서로 부등켜 '네가 나'를 안아주는 전우애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바다사자의 즉석 불고기에 한 잔씩의 술이 돌자 좌중을 향해 한마디 말을 아니할 수 없었다.

"오늘의 전투는 순간적으로 맞게 된 것이었지만 용맹한 동지들의 조국애로써 일본함정은 물러갔소. 이는 우리 독도수비대의 승리일뿐 아니라 길이 역사에 남을 쾌거요. 다만 중화기가 없는 탓으로 PS 9정을 바닷속 깊이 격침시키지 못한 것이 한이 되오. 그러므로 어떻게든 중화기를 구해볼 작정이요"하고 말하니 좌중에서 박수와 함성이 터져나왔다.



Screenshot_20201119-141120_Chrome.jpg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간에 벌어진 무력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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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nshot_20201119-140848_Chrome.jpg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간에 벌어진 무력충돌

Screenshot_20201119-140933_Chrome.jpg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간에 벌어진 무력충돌
http://m.ktv.go.kr/program/again/view?content_id=495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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